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.29 선언 (문단 편집) == 미국 개입설 == 박세길은 저서 <다시쓰는 한국현대사> 3권에서, 6.29 선언은 미국의 개입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는데, 당시에도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7070200209204001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87-07-02&officeId=00020&pageNo=4&printNo=20229&publishType=00020|동아일보 1987년 7월 2일 기사]]와 [[http://news.joins.com/article/2106204|중앙일보 1987년 6월 30일 기사]] 같은 곳에서 그런 추측들이 나온다. 실제 미국 일부 인사들은 6.29 선언 주도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자신들의 공적으로 선전하기도 했는데, 스티브 솔라즈는 게스틴 시거를 '노벨평화상 감'이라고 발언하였다.[* 원 출처: <통일교실> - 민성일 저. 돌베개. 1991.] 그리고 시거는 "1987년에 대선이 있을 것"이란 말을 남기고 선언 다음 날 한국을 떠났다. 물론 이때는 대선 일정은커녕 개헌조차 착수하지 못한 시점이었다.[* 원 출처: <한미관계의 재인식(2권)> - '한국 정치변혁기의 미국의 역할(김홍석 글)'. 두리. 1991. p26.] 다만 과거 군부독재를 용인해줘[* 사실 한국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고, 대만이나 인도네시아, 칠레, 니카라과, 온두라스, 아르헨티나, 브라질, 이집트, 파라과이, 과테말라, 우루과이, 태국, 이란 등 많은 국가들의 독재정을 지원했고, 특히 [[더러운 전쟁]]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중남미에선 용인 정도가 아니라 직접 개입하는 흑역사를 찍기도 했다. 덕분에 이들 나라 상당수가 고생해가며 민주화를 이룩한 지금 와서 보면, 냉전 시절 자유세계를 대변한다던 당시 미국이 [[도미노 이론]]에 매몰되어서 제3세계 민주주의엔 눈을 감는 흑역사를 찍었다고 할 수 있다. 물론 정권마다 성향 차이는 좀 있었다. 예를 들어 1970년대 후반 당시 민주당 출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론까지 거론하며 한국의 인권 개선을 촉구한 적도 있었다.], 오히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국 쯤으로 인식되던 미국이 어떻게 저럴 수 있냐며 국내 반미주의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던 당시를 생각해보면[* 물론 굳이 말하자면, 당시 미국도 냉전 구도 속에서 국제 정황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기에 굳이 우방 국가 벌집 건드리지 말자는 안이한 시각도 있었다. 물론, 그런 미국조차 한국의 독재자들이 [[김대중 납치 사건|저지른]] [[5.18 민주화운동|짓]]에는 경악해하며 당시 야권인사였던 [[김대중]]을 구출하는데 나름 신경을 썼고, 해당 항목에서도 말하는 미국 개입설의 근거가 되는 [[6.10 민주 항쟁]] 당시 신군부의 무력진압 계획을 저지하는 등 정치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노력들을 했다.], 이는 상당히 아이러니한 부분이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